뉴욕  예일  장로교회 | Yale Korean Presbyterian Church of New York

주의 손에 이끌리어

본문: 느헤미야 2:1-10
제목: 주의 손에 이끌리어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가면서 가장 소망하는 것이 있다면 “주의 손에 이끌리어” 사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손은 매우 특별한 손입니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하 29:11-12).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져 있다는 소식을 듣고 울며 금식하며 기도하던 느헤미야가 이제 바사 왕의 허락을 받고 국경 통과를 위해 왕의 조서를 받고, 성벽재건을 위한 재목까지 공급을 받게 됩니다. 심지어는 그가 구하지 않은 것까지 왕이 허락했는데 그것은 군대 장관과 마병을 보내 함께 가게 한 일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한 손이 그를 도우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8절).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손에 이끌리어 살 수 있습니까?
1.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1절)
성경에는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한다고 잠언서에는 말씀합니다(잠 17:22). 그런데 또한 성경에는 근심하라고 합니다. 고린도후서 7장 10절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이루고 세상 근심은 사망을 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너진 성벽을 보고 우는 것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앞두고 그 성을 보시며 우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눅 19:41).

2. 기도하며 기다림(1절)
느헤미야가 유다로부터 온 하나니의 성벽이 무넘짐에 대한 보고를 받을 때는 11-12월에 해당하는 기슬르월이었습니다. 그러나 왕 앞에 포도주를 드릴 때는 3-4월에 해당하는 니산월이었습니다. 그러면 약 4개월 동안 아무리 왕의 신임을 얻어도, 빨리 성벽 재건을 하고 싶은 조바심이 있어도 절대 하나님을 앞서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움직여 주실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내가 앞설 때 나의 실수와 부족함도 함께 나타납니다.

3. 권위에 대한 존경과 예의(2-3절)
얼굴에 수심이 있음을 안 왕이 느헤미야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예의를 갖추어 조상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탄 채로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사실 1차 포로귀환 후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성전 재건을 할 때 반대 세력이 바사 왕을 반역하는 행위라고 고소해 성전 재건이 일시 중단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성벽을 재건한다는 것도 역시 바사왕에게 반역 의도가 있다고 오해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겸손히 예의를 갖추며 왕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을 합니다. 조상의 묘가 사나운 짐승들에게 훼손되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느냐는 동정심을 유발한 것입니다. 순종할 만해서 왕에게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왕에게 주신 질서이기에 순종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식의 말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말을 합니다.

4. 기회를 포착함(5-8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기도하는 자에게 반드시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가 올 것입니다. 그 때는 정확히, 구체적으로 구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바로 구하는 기도에는 하나님께서 솔로몬처럼 구하는 것 이상을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