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롬 16: 19
제목: 충성된 일꾼의 신앙 원칙
로마서를 마치면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6장에 35명의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 밖에 모르는 사람이요, 교회와 복음 전파에만 온 정성을 쏟은 사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혼자만 복음 전파한 것이 아니라 그를 도운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이 기록하며 그들을 칭찬하며 격려하는 부드러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교회는 헌신없이 세워지지 않습니다(1-16절).
겐그레아 교회의 여집사 뵈뵈를 로마 교회에 소개하면서 마치 자기를 대하듯이 그의 필요를 채워달라고 합니다. 뵈뵈 집사는 사도 바울이 쓴 로마서를 로마교회에 전달한 자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얼마나 신뢰했으면 교통수단이 발달되지 않은 때에 자신이 쓴 로마서를 여자인 그에게 부탁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사도 바울의 목숨을 위하여 자기 목까지도 내 놓은 사람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들 부부는 자기 집을 초대교회로 사용하도록 내어 놓은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고린도에서 사도 바울을 만나 복음을 받은 그들이 사도 바울이 에베소로 갈 때 자기들의 사업을 접고 복음을 위해 함께 에베소로 가는 것을 봅니다. 그 외에도 헌신한 사람들 앞에 붙은 수식어가 매우 감동접입니다. “많이 수고한, 함께 갇혔던, 사랑하는,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는”등의 수식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아름다운 헌신을 통해 교회가 든든히 서가고, 복음이 온 세계에 힘 있게 전파되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 교회에는 분쟁을 일으키는 자도 항상 있습니다(17, 18절)
로마교회에는 사도 바울의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주를 섬긴다고 하지만 그들의 진짜 내면에는 자기 배를 섬기는 야망이 숨어 있었습니다. 교회야 어찌되든 나만 잘 되면 된다는 이기적인 욕심이 숨어 있었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말을 잘 한다는 것입니다.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를 미혹하는 자들입니다. 이 모습은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선악과를 딴 인간은 악을 저지르는 데 지혜롭고 용감해 졌습니다. 결국 기쁨의 동산에서 쫓겨 나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상황에서 충성된 일꾼의 신앙원칙을 간결하면서도 힘 있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롬 16:19). 선한 것이란 위에서 열거한 35명의 신앙 모습입니다. 살아도 주를 위해, 죽어도 주를 위해,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인 사람들의 모습입니다(롬 14:8).
- 우리의 미래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이 말씀이 기록된 배경은 유럽입니다. 그렇게 사도 바울과 많은 충성된 일꾼들의 헌신을 통해 복음이 전파되었던 곳이 지금은 오히려 복음을 받아야 할 복음의 불모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미국도 유럽의 모습을 점차 닮아가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도 점점 이런 모습으로 가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선한 데 지혜롭지 못하고 악한 데 용기 있고 지혜로워져 가는 미국에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살고 있습니다. 여기에 저의 한 맺힌 소원이 있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의 뜻에 민감하고 악한 것에 물들지 않기를 간절히 원했던 사도 바울의 소원은 바로 우리 하나님의 소원이라고 믿습니다. 이후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께서 일일이 우리가 주를 위해 헌신한 것을 이렇게 기억해 주실 것입니다. 행여나 복음을 거스르거나 교회에 분쟁을 일으켰다는 지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기를 소원합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충성된 헌신을 보여주어 자녀들을 통해서 더욱 하나님의 교회가 든든히 서가고 하나님의 나라가 힘 있게 확장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