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 가지 이름만 가지고 사는 것 같지만 엄밀히 말하면 세 가지 이름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이름은 출생 시 부모님으로 부터 받는 이름입니다. 둘째는 사는 동안 얻어지는 이름입니다. 저 같으면 목사라는 이름이 사는 동안 붙여진 이름입니다. 셋째는 세상을 떠날 때 남기는 이름입니다. 이 이름은 그 사람의 일생을 정리하여 후대가 붙여주는 이름입니다. 그런데 첫 번째 이름도 바꿀 수 있고, 두 번째 이름도 바꿀 수 있지만, 세 번째 이름은 바꿀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이름은 그가 살아 온 삶의 발자취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름이 바뀐 사람들이 있습니다. 높아진 아버지란 뜻의 ‘아브람’은 열국의 아버지란 뜻의 ‘아브라함’으로 바뀌었습니다(창 17:5). 다투는 자란 뜻의 ‘사래’는 여주인, 혹은 열국의 어머니란 뜻의 ‘사라’로 바뀌었습니다(창 17:15). 발꿈치를 잡았다는 뜻의 ‘야곱’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의 ‘이스라엘’로 바뀌었습니다(창 32:28). 큰 자라는 뜻의 ‘사울’은 작은 자라는 뜻의 ‘바울’로 바뀌었습니다.
2020년은 숫자적으로 볼 때 20이 두 번 반복되는 특별한 해입니다. 그래서 흐르는 시간 속에 특별한 의미를 담고 싶어 워십 마치(Worship March)라는 목표를 향해 새해를 힘차게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10월 중순을 지나고 보니 2020년은 전 세계가 온통 보이지 않는 작은 바이러스인 코로나바이러스로 요동쳤던 해였습니다. 여기엔 세계 최강의 국가도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코로나바이러스의 영향으로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에 오히려 제한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교회 역사를 보면 교회는 언제나 위기 속에서 변화되었고, 그 속에서 오히려 교회의 본질을 회복해 왔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종교개혁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사람들은 언제나 위기 속에서 그들의 삶이 변화되었고, 그 속에서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회복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모습을 오늘 그들의 이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비행기는 이륙할 때보다 착륙할 때가 더 위험하며 중요합니다. 비행기가 잘 착륙하면 승객들이 박수를 쳐 줍니다. 2020년 이 해를 어떻게 착륙시킬 것인지 생각할 때입니다. 어떤 이름으로 이 해를 마무리할 것인지 고민해야할 시간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본질이 회복되고, 우리 교회의 사명이 더욱 선명해지는 2020으로 기억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