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예일  장로교회 | Yale Korean Presbyterian Church of New York

예배가 예배되게

눅(Luke) 7: 36-50

제목: 예배가 예배되게

지난 주일에는 말라기서를 통해 메시아가 오신 이유를 두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하나는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기 위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의로운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드린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이야기의 줄거리입니다.

한 바리새인이 그의 집에 예수님을 초대했습니다. 그 때 돌발적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 동네의 죄를 지은 여인(창녀)이라고 알려진 여인이 예수님께 다가와 서서 울고,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었습니다. 바리새인은 예수님이 선지자시라면 이 여인이 어떤 사람인 것을 알고 그런 행동을 말렸어야 하는데 아무 거부 반응도 없는 것을 보고 속으로 탐탁찮게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그의 마음을 아시고 한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500데나리온 빚진 자와 50데나리온 빚진 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갚을 능력이 없어서 빚을 준 사람이 둘 다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누가 더 탕감해 준 사람을 사랑하겠느냐는 질문입니다. 바리새인은 당연히 많이 탕감 받은 사람이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은 옳다고 말씀하시고 바리새인과 죄 지은 여인의 예수님을 향한 태도를 비교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은 손님 접대에 기본 예의도 갖추지 않았습니다. 회개는 없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데 빠른 사람입니다. 종교화된 사람, 껍데기 신자, 혹은 의식화된 신앙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죄 지은 여인의 모습을 봅니다.

  1. 거룩한 갈망(굶주림)이 있는 예배자

죄 용서의 감사와 감격에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주님을 경배하기를 소망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초대받지 못한 사람, 남이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이었지만 멸시를 당할 각오를 하고 용기를 내어 주님께 왔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당할 수 있는 수모보다 주님의 용서와 사랑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1. 옥합을 깨뜨리는 감사가 있는 예배자

예배의 뿌리는 평생 갚을 수 없는 죄의 빚을 십자가에서 용서해 주신 사랑에 대한 감사와 감격입니다. 그것 때문에 찬양과 경배, 헌금, 봉사, 전도를 주께 드리는 것입니다. 흔히들 “예배가 참 좋았어요.” 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설교, 찬양, 예배 분위기를 두고 말 할 때가 많습니다. 예배는 내가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중심입니다. 내가 축복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께 사랑과 헌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참 예배는 “너희가 드리는 예배가 참 다르구나!” 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참 예배는 소중한 옥합을 깨뜨려 거기서 나오는 감사와 찬양을 주님께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 예배의 부흥을 꿈꾸는 예배자

부흥은 교인 숫자가 늘고 재정적 규모가 커지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예배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 향유 옥합을 깨고 눈물로 그의 발을 씻는 것입니다. 은혜 받을 수 없는 사람이 은혜 받는 것입니다. 예배의 부흥은 에스겔 47장처럼 성전에서 흘러나와 가정을 적시고 세상으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 물이 흐르는 곳마다 살아나는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배가 살아야 교회가 부흥합니다. 교회가 부흥해야 가정과 사회가 치유되고 회복됩니다.

 

[결론]

하나님은 예배에서 2등 취급을 받기 원하지 않습니다. 참 사랑은 전부를 주고 전부를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희생시키시기까지 전부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데이트할 여자 친구를 찾고 계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반지를 끼워줄 신부를 찾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그 신부와 함께 어린양 혼인 잔치에 들어가실 것입니다. 우리는 거기서 영원히 영광을 주님과 함께 누리게 될 것입니다. 참 예배를 드리는 정결한 신부로서 금년 성탄을 맞이하지 않으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