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예일  장로교회 | Yale Korean Presbyterian Church of New York

어머니의 사랑

출(Exod) 2: 1-10

제목: 어머니의 사랑

유대인 전설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구해오라고 하셨습니다. 천사는 아름답게 핀 장미꽃 한 송이와, 갓난아기의 방긋 웃는 모습과,
어머니의 사랑 이 세 가지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한참 지체하면서 꽃은 시들어
흉하게 되었고, 갓난아기는 자라 그렇게 아름답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사랑은 여전히
영원하고 아름다웠습니다.
1. 모세가 태어날 때 상황
요셉을 따라 애굽으로 이주한 야곱 가족은 약 400년이 지나면서 생육이 불어나고 번성이 매우
강해졌습니다. 요셉을 모르는 새 왕이 들어서면서 전쟁이 일어나면 대적과 합하여 반역 후 출애굽할까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국고성 건축, 벽돌굽기와 농사일 등 고된 노동을 시켰습니다. 그래도
안 되니 산파들을 시켜 아들이면 죽이고 딸이면 살려두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아이를 살렸습니다. 바로의 마지막 카드는 아들이 태어나면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는 것이었습니다.
2. 어떤 레위 가족의 이야기
요게벳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임신했을 때 차라리 딸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낳고 보니 아들이었습니다. 아이는 엄마 태속에서 9개월을 지냅니다. 엄마와 아이는 하나입니다. 육체적 성장 뿐만 아니라 영적, 정신적으로 영향을 받습니다. 아들이 잘 생긴 것을 보고 엄마는
석달을 숨깁니다. 물론 외모가 잘 생겨서 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뭔가 특별한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아이는 보통 아이가 아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쓰실 아이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최선을 다해 살려 보려했지만 석 달을 넘길 수 없게 되었습니다.
3. 더 이상 내 힘으로 안 될 때
갈대상자에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물에 띄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울었을까요? 핏 덩어리를 떠나 보내는 마음 얼마나 아팠을까요? 우리는 자녀들을 대학 기숙사에
보내면서도 우는데 말입니다. 이제는 하나님께 맡기는 길 밖에 없었습니다. 찬송가 가사처럼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 옵소서…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염평안씨의 ‘요게벳의 노래’는 이 감정을 매우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 너의 삶의 참 주인 너의 참 부모이신 하나님 그 손에 너의 삶을 맡긴다. 너의 삶의 참 주인
너를 이끄시는 주 하나님 그 손에 너의 삶을 드린다.”
믿음은 맡기는 것입니다. 마침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강에 나왔다가 갈대상자를 열어 봅니다.
아이가 우는 것을 보고 불쌍한 마음이 들어 자기 양자로 삼습니다. 모세의 누나 미리암의 소개로
요게벳은 삯을 받으면서 안전하게 사랑하는 아들을 가슴에 품고 젖을 먹입니다. 젖만 먹였겠습니까?
신앙을 먹였겠지요. 어린시절 이 신앙교육이 이 후 40년 애굽의 교육보다 더 힘이 있었던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결론] 십계명은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비결로 부모 공경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장수만 하고 못 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땅에서 잘 되고 장수 못하면 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둘 다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의 제5계명은 사람 됨의 기준입니다. 실력있고 능력있어도 부모 몰라보면 기본이
안 된 사람입니다. 부모님의 소원은 자식이 잘 되는 것입니다. 부모 소원대로 살아서 망하는
사람없습니다. 특히 주님 품으로 돌아오라는 어머니의 소원을 꼭 들어드리세요. 예수 잘 믿으라는
부모님의 소원을 꼭 들어드리세요. 세상의 왕은 지금도 우리 자녀들을 물에 던지라고 합니다.
무신론과 세속화의 물결, 이기주의와 쾌락주의의 물결에 던지라고 합니다. 요게벳처럼 갈대 상자를
만들어 역청을 바르고 나무진을 바르듯이 예수님의 보혈로 세상 물결이 우리 자녀들을 삼키지 못하게 막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모세와 같은 훌륭한 주의 종들이 배출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