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은 흘러 바다로 갑니다. 그러면 마침내 강물과 바닷물이라는 두 물줄기가 만나게 됩니다. 이 때
강물 속에 있는 퇴적물이 바닷물 속에 있는 염분과 진흙 등과 만나 서로 엉켜서 강 하구에 비옥한 땅을
만들어 냅니다. 이것을 우리는 삼각주라고 부릅니다. 삼각주는 비옥해서 많은 생물의 보금자리가 됩니다.
누가복음 7장에 보면 나인성에 사는 한 과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에게는 독자가 있었습니다. 아직 살
날이 많이 남은 청년이었는데 그 독자가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배고파도, 아파도 살아 있으면 그래도 희망이
있을 텐데 죽고 나니 모든 소망이 끊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남편이 죽었을 때도 슬픔은 컸지만 독자의 죽음이
가져온 슬픔은 아마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컸을 것입니다. 그 과부가 울며 장례 행렬을 따라가는데 동네
사람들이 너무 안타깝고 불쌍해서 그와 함께 장례행렬을 따라 갑니다.
그 때 이 나인성을 향해 또 다른 행렬이 들어옵니다. 바로 예수님과 제자들이 많은 무리와 함께 이 성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이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울지 말라”고 위로하십니다.
아마 우리도 이 정도 위로는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청년의 관에 손을 대시며 말씀
하십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죽었던 청년이 일어나
앉고 말도 하는 것입니다. 그 광경을 본 어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죽음이 가장 큰 슬픔이라면 다시
살아난 것은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 청년을 어머니에게 돌려 주셨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 세상에는 고통과 죽음의 물줄기가 흐르고 있습니다. 인간 스스로는 이런 물줄기를 극복할 능력이 없어
모두 고통하며 신음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또 다른 물줄기가 있습니다. 그 물줄기는 고통받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물줄기입니다. 이 두 물줄기가 만나면 고통은 기쁨으로 변하게 됩니다. 죽음은
생명으로 변하게 됩니다.
성탄절이 다가 옵니다. 우리는 기쁨으로 성탄절을 기다립니다. 우리가 성탄절을 기뻐해야 할 진짜 이유가
무엇일까요? 가장 크게 기뻐해야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망과 슬픔으로 고통받는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는
것입니다. 죽음의 역사의 물줄기를 생명의 물줄기로 변화시켜 주시려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구원자로 보내신 것입니다. 인류의 애통의 눈물이 하나님의 자비의 샘과 만나면 생명의 부활이라는 비옥한
삼각주가 우리 안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번 성탄절에 함께 이 생명의 물가로 나가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생명수를 함께 마시면 좋겠습니다.
고통과 죽음의 물줄기가 기쁨과 생명의 물줄기로 변하는 기쁨을 함께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