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예일  장로교회 | Yale Korean Presbyterian Church of New York

시편 131편 묵상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시 131:1-3).
오래전에 업스테이트 뉴팔츠(New Paltz)에 있는 모홍크 국립공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동부의 스위스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운 공원입니다. 특히 1,200피트 우거진 숲 속에 있는 산상호수에서
볼 수 있는 숲과 맑은 호수의 대칭을 이루는 리플렉션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것을 잊고 그
아름다움 속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잠시나마 마음이 아름다워지고 평화로워짐을 느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중요성에 집착하면 할수록 더 불안해집니다.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 가정은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 직장과 자녀는 어떻게 될 것인가? 등을 생각하면 할수록 더 불안해집니다.
그러나 놀랍고 경이로운 것을 보면 볼수록 스스로에게 덜 집착하게 됩니다. 기독교 신앙도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편 131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젖 뗀 아이와 같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젖 뗀
아이와 젖을 아직 떼지 않은 아이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젖을 아직 떼지 않은 아이는 울음을 통해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반면에, 젖을 뗀 아이는 고요하고 평온하게 엄마 품에 있는 것입니다. 이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아마 엄마가 적절한 시간에 자기에게 젖을 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차이는 젖을 떼지 않은 아이는 엄마 젖만 먹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젖을 뗀 아이는 엄마 젖
외에도 훨씬 다양한 이유식을 먹게 됩니다.
끊임없이 산불과 홍수와 가뭄의 소식이 우리 귀에 들려옵니다. 코로나 전염병도 없어진 것 같다가도
다시 고개를 듭니다. 우리 자신에게 집중하다보면 불안하고 두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성경을 보면
노아 시대의 홍수나 엘리아 시대의 가뭄은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버틸 때가
아닙니다. 이제는 다윗처럼 기도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주님!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않겠습니다. 내 눈이 오만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않겠습니다. 젖 뗀 어린아이와 같이 여호와를 바라보게 하옵소서.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라보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