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예일  장로교회 | Yale Korean Presbyterian Church of New York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의 복

계(Rev) 22:6-15

제목: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의 복

1. 종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
종말의 날짜는 모르나 징조는 안다.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종말의 징조를 알 수 있다. 즉. 적그리스도
출현(이단), 전쟁, 지진, 기근, 전염병, 테러, 불법이 성행, 사랑이 식음, 복음이 온 세계 전파 등이다
(마 24장, 막 13장, 눅 21장). 확실한 것은 점점 더 분명해진다는 것이다.
2. 계시록의 기록 목적
환란 중에 있는 성도를 위로하고 격려하여 믿음을 배반하지 않고 박해를 물리치도록 기록되었다. 특히
묵시 문학이라는 독특한 문학양식을 가지므로 상징과 암호를 잘 풀어야 바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유대인들은 잘 알지만 원수는 모른다. 구약의 다니엘서와 신약의 계시록이 묵시 문학의 대표이다.
한국 사람도 잘 모른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형태의 모습을 가진다. 계시록에
무관심하거나 아니면 아주 극단적으로 해석을 하는 경우이다. 이단들이 주로 극단적인 해석을 한다.
성도들이 훈련을 받지 못하면 무비판적으로 잘못된 종말론을 따르게 되는 위험이 있다.
3. 요한계시록의 7복 중 6번째 복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22:7).
계시록 1:3과 같은 말씀이다. 환란이 있어도 말씀의 약속을 붙잡고 승리하자. 건전한 종말론은
성경중심적이어야 한다. 중요하니까 반복한다. 주관적 계시에 미혹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잘못되면
1992년 10월 28일의 시한부 종말론과 같은 사고가 터진다.
계시록 22:18-19은 이 계시의 말씀 외에 더하면 이 책에 기록된 재앙이 더하고, 제하면 생명책에서
제하여 진다고 엄격히 말씀하고 있다.
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 복이 있다”(22:14).
특정 사건(중동전쟁)이나 어떤 특정한 인물(누가 적그리스도냐?)에 대한 관심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씻음 받음을 강조하자. 이런 자가 생명나무에 나아갈 권한을 가지게 되고, 새 예루살렘 성
성문을 통해 그 성에 들어가게 된다. 이 일곱 번째 복도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는 세 번째 복과 동일한 말씀이다. 중요하니까 다시 한 번 더 강조하고 있다.
옷을 빤다는 것은 계속해서 빤다는 뜻이다. 이 말씀을 예수님은 한 번 목욕한 사람은 발만 계속
씻으면 된다는 뜻으로 해석하셨다(요 13:10).
[결론]
종말 징조에 흔들리지 말고 견고하여 더욱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자(고전 15:58). 재림 시기나
재림 징조보다 정결한 신부로서 신랑 예수 그리스도를 맞을 준비를 강조하자. 신비적 계시보다 성경 중심의
종말론을 더 강조하자. 종말에 일어나는 특정 사건이나 특정 인물에 주목하기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함을 받은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