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 46:1~11
제목: 하나님의 타이밍
오늘 시편에서 세 번 반복되어 나오는 말은 하나님은 우리가 환란을 당할 때 우리의 피난처와 힘이시라는 것입니다(1, 7, 11절). 2절과 3절은 환란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땅, 산, 바다가 흔들리고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여전히 하나님은 우리의 숨을 수 있는 피난처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힘입니다.
4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성은 예루살렘입니다. 강이 없는 도성이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수로 말미암아 영혼을 살리는 은총을 입게 됩니다. 5절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계시는 성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벽에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새벽은 가장 어두울 때입니다. 그러나 그 새벽은 아침에 가장 가까운 시간입니다.
이 말씀은 열왕기하 19장과 이사야 36장을 배경으로 쓰여 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앗수르의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침공했을 때 히스기야 왕은 랍사게의 손으로 전해진 하나님을 모독하는 편지를 들고 성전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이 편지를 보시라고, 그리고 그들의 소리를 들으시라고 눈물로 탄식하며 기도합니다. 그 다음날 새벽에 앗수르 군 18만 5천이 전멸합니다. 하나님이 아니고는 할 수없는 일입니다. 그 일을 보고 주변 나라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새벽에 도우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라고 노래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타이밍입니다. 하나님의 타이밍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가 조급하게 손을 대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영적 순례의 길을 비전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 비전이 현실화되기 까지는 반드시 깊은 골짜기를 통과해야 합니다. 아브라함도 그랬고 요셉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타이밍을 기다리지 못하고 그만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는 지금까지도 전 세계의 갈등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의 타이밍을 잘 기다렸습니다. 형제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보디발의 아내에게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으며, 감옥에서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몽해 주었지만 잊혀진 세월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의 타이밍에 그는 감옥에서 총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가만히 있는 것은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 이 환란이 나의 죄 때문이 아닌지 생각해보고 만일 그렇다면 회개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나의 변하는 감정에 의지하지 말고 더 기도하고, 더 말씀보고, 더 찬양해야 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이 때 사단을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셨다고 끊임없이 속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런 환란을 통해 나를 연단하시고 더 큰 하나님의 사람으로, 그리고 섬기는 사람으로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비전을 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