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다녀왔습니다. 남아공은 빈부의 차가 격심한 나라, 아프리카 땅이지만 유럽 같이 잘 사는 나라, 2010년 월드컵이 열린 나라, 그리고 그 유명한 ‘넬슨 만델라’라는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있었던 나라 정도로 제가 알고 있었던 나라였습니다. 이번에 기회가 생겨서 큰 딸과 함께 수도인 요하네스버그와 희망봉으로 알려져 있는 케이프타운을 둘러 볼 수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그 넓은 땅 덩어리 가운데 가장 남단에 위치한 남아공은 아프리카 대륙 중에 가장 잘 사는 나라이지만 가장 치안이 불안한 나라이기도 했습니다. 인종간의 갈등이 얼마나 뿌리 깊게 역사와 사회 속에 자리 잡고 있는지를 한 번에 눈치 챌 수 있었지요.
일 년 내내 날씨가 좋은 자연환경을 가진 나라답게 공기도 맑고 도로가 시원하게 잘 닦여 있어서 다니기도 좋아 아프리카라는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했지만 가슴 속에는 시린 찬바람이 돌 정도로 가슴 아픈 땅이기도 했습니다.
딸과 함께 케이프타운을 둘러보는 중에 다운타운 중심가 한 복판에 흑인 노예들의 집인 Slave Lodge와 노예시장이 섰던 자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Slave Lodge는 잡아온 노예들을 집단으로 가둬 두었던 곳이었고 그 가까이 조금 넓은 터는 노예들을 팔려고 노예 시장이 열렸던 곳이었습니다. 그 노예시장이 열렸던 곳에 눈길이 가는 몇몇 돌들이 있었습니다. 높이가 조금씩 다른 네모 난 평평한 돌들이 뭐냐고 궁금해서 물으니 그것들은 노예시장이 열릴 때 팔려는 노예들을 상품으로 세워두는 자리였다고 가이드 하시는 분이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불결하고 형편없는 건물에 노예들을 가득가득 채워서 그 속에서 죽어 나간 노예들도 많았다며 그래도 팔리는 노예들은 그런 악 조건의 환경 속에서 살아남은 건강한 노예들이었다고 합니다. 그 설명을 듣는 중에 그 옛날 로마 시대 노예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저렇게 돈을 받고 팔린 노예들이 새로운 주인집에서 일을 하게 되었지만 더러는 도망쳐 나가는 노예들도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우리가 알고 있는 신약 성경에서 빌레몬이 데리고 있었던 ‘오네시모’ 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로마시대 뿐만 아니라 근대에서도 이런 노예시장이 존재한 것을 보면서 노예들의 비참함이 느껴졌고 참으로 몹쓸 짓을 부끄럼 없이 행했다는 것에 뒷맛이 씁쓸했습니다. 그 당시 노예라는 신분은 인간 취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단지 물건에 지나지 않았고 주인의 재산으로 취급되었는데 그런 사회적 여건 속에서 주인집을 도망쳐 나가는 노예들은 정말 인생의 벼랑 끝에 몰리는 거였습니다. 자유로운 신분이 되고자 도망쳤지만 만약 잡히면 그때의 관습으로는 당연히 사형감이거나 심한 고문을 당하는 것이 뻔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주인에게 손해를 끼치며 도망친 오네시모는 정말 빌레몬, 주인의 입장에서는 원수 같은 노예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이 노예가 사도 바울을 만나 복음을 듣고 회심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복음 안에서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했다는 것이지요. 도망자였던 오네시모가 죽음을 무릅쓰고 다시 주인에게 돌아가려는 결심을 하기까지 그는 그 만큼 복음 안에서 성숙한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자기의 잘못을 회개하고 그 행위에 대해 책임질 줄 아는 성숙한 오네시모를 사도 바울은 주인인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며 그를 용서하고 하나의 인격체로 대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게다가 주인에게 손실을 입혔다면 바울 자신이 모두 갚아 주겠다고 까지 약속합니다. 주인에게 손해를 끼치고 도주한, 죽어 마땅한 노예를 위해 사도 바울이 복음 안에서 베푼 사랑과 자기희생적인 권면, 그리고 지도력은 정말 그 당시로서는 너무나 파격적인 생각이며 행동으로 충격,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도망친 노예를 그리스도 사랑 안에서 용서하고 그를 받아들이고 복음 사역자로 헌신하게 만든 사도 바울의 넓은 사랑의 포용력과 지도력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지 않고서는 인간의 죄 된 본성에서는 나올 수 없는 행위입니다. 오네시모가 전에는 무익한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사람이라는 결론은 너무 감동스런 대목입니다. 그리고 이런 오네시모의 모습은 죄 용서 받은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전에는 무익한 세상의 종노릇하는 우리들이었지만 지금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용서받고 새 생명을 소유한 유익한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는 우리들 말입니다.
노예 시장 터에서 오네시모를 생각하며 다시금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복음의 능력의 위대함을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