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한국의 성지라고 불리는 호남 순교지를 방문했습니다. 작년에 우리교회에 부흥회를 인도하신 안산 빛나교회 유재명 목사님의 초청으로 그 교회 조장(다섯 구역 섬김이)과 지역장(열 조 이상 섬김이) 수련회에 저희 부부가 함께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 군산 아펜젤러 선교사 순교 기념관
아펜젤러 선교사는 27세의 나이에 한국 최초의 감리교 선교사로 1885년 부활절에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와 함께 인천항에 첫 발을 디딘 선교사입니다. 배재학당, 정동 감리교회 등을 설립한 선교사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1902년 성서번역자회 참가차 목포를 향해 가다가 일본 상선과 충돌하여 군산 앞 바다에서 순교하게 됩니다. 원래 수영 선수였던 그가 함께 탔던 비서와 여학생을 구출하려고 애썼다는 마지막 증언을 남기고 한국 선교 18년을 마감했습니다.
- 김제 금산교회
한국 유일의 초기 ㄱ자 교회의 형태를 간직한 교회입니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유교 사상을 따라 예배에 참석한 남녀 성도가 서로 얼굴을 보지 않도록 설계한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지주 조덕삼 보다는 그 집 마부 이자익이 먼저 장로가 된 일화가 남아 있습니다. 조덕삼은 이런 상황을 하나님의 뜻으로 잘 받아들여 이자익 장로를 잘 섬겼으며 후에 총명한 그를 신학교에 보내어 목사를 만들고 졸업 후 금산교회 목회자로 모신 아름다운 믿음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 신안군 증도 문준경 전도사 순교 기념관
미신과 우상과 가난과 무지의 바다를 복음의 땅, 순교의 섬으로 바꾸신 분입니다. 신안군 일대 섬들을 일 년에 아홉 켤레의 고무신을 갈아 신으면서 복음을 전하며 10개의 교회를 설립했습니다. 그 교회 출신 중에 김준곤 목사, 이만신 목사, 정태기 목사 등 한국 교회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6.25 때 공산당에 의해 “새끼를 많이 깐 씨 암탉이구만” 하는 소리를 들으며 바닷가에서 죽창에 찔려 순교를 당하셨습니다. 그의 순교의 피로 신안군 증도는 90%가 개신교 신자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 영광군 염산교회
6.25 때 공산군에 의해 전 교인의 3/4인 77명이 순교를 당한 교회입니다. 한국 교회사에 한 교회 최다 순교자를 낸 교회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공산당은 새끼줄로 손을 뒤로 묶고 목에 큰 돌멩이를 달아 수장시켰습니다. 그들은 죽어 가면서도 “예수님 감사합니다”하며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 영광군 야월교회
이 교회는 6.25 때 공산군에 의해 교회가 불타고 전 교인 65명이 모두 순교한 교회로 알려져 있습니다. 3개월에 걸쳐 순교가 이루어졌기에 도망갈 기회도 있었으나 다른 성도 순교할 때 혼자 도망가 살면 이 후에 주님 뵐 때 부끄러워 어찌 주님 얼굴 뵈올까하며 모두 함께 순교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고 합니다. 죽어 가면서도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이라는 찬송을 부르며 흙구덩이에 매장되었다고 합니다.
- 여수 애양원 교회와 손양원 목사 순교 기념관
손양원 목사님의 신사참배 반대로 옥고를 치르신 일, 해방 후에도 한센병 환자들을 사랑으로 섬기신 일, 공산당에 의해 두 아들을 잃고도 아들을 살해한 공산당 청년을 양자로 삼으신 일, 전국에 부흥회 강사로 다니시며 순교의 신앙을 설교하신 일 등이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 순천 기독교 역사박물관
순천시 매산동에 위치한 기독교 역사박물관은 약 100여 년 전부터 한국 교회에서 활동했던 선교사들의 유물과 영상을 통해 한국 기독교 복음의 역사와 더불어 한국 근대사에 대한 이야기를 진한 감동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