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예일  장로교회 | Yale Korean Presbyterian Church of New York

형통

코로나바이러스가 가져다주는 영향이 6개월을 지나갑니다. 우리는 그 동안 익숙해 있었던 일상생활의 멈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건강, 경제, 만남, 교육, 예배의 멈춤 등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을 경험하며 정서적으로 많이 위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일상(new normal)에 적응하느라 이민 초기와 같은 긴장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런 삶을 살고 있는 성도님들을 위한 기도제목이 많지만 저의 기도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형통’이었습니다. 요즘 새벽기도 시간에 창세기의 요셉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요셉의 이야기가 형통에 대한 정의를 가장 명확하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성경적 형통은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고 평탄한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형통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말합니다(창 39:2, 3).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사서 애굽으로 팔려갔습니다. 낯선 땅에서 노예 생활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을 형통이라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형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형통한 사람 때문에 그 사람이 있는 곳을 형통하게 하십니다. 어두운 곳이 밝아집니다. 안 되던 곳이 잘 됩니다. 흉년든 곳에 풍년이 듭니다. 보디발의 집에 풍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형통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이 필요합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이기기 위해 요셉은 세 가지 중요한 결단을 합니다. 첫째 비록 주인의 아내가 유혹한 것이지만 그에게 손을 대서 주인의 믿음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윤리의식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는데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겠다는 신앙의식입니다. 셋째, 성적인 유혹은 자기 힘으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유혹의 자리를 피하는 결단이었습니다. 요셉은 이로 인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으나 하나님의 형통케 하시는 은혜는 갇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결단이 한 집안의 가정 총무에서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는 지름길이 되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형통의 복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 때문에 여러분이 계신 곳이 형통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때문에 우리 교회가 형통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 때문에 열방이 형통해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