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접어들면서 이슈는 스피드였습니다. 속도가 없으면 모든 것이 뒤쳐진다는 긴장감을 느끼면서 살아왔습니다. 이 현상을 가속화시키는 요소를 3T 라고도 부릅니다. 그것은 이동통신의 발달, 교통수단의 발달, 그리고 빈번한 여행(Tele-communication, Transportation, Tourism) 등으로 꼽습니다. 인류 역사는 앞으로 얼마나 더 빨리 진행될 것인가에 대한 연구는 끊임없이 계속되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고, 인공지능(AI)의 역할이 사람을 대신할 시대로 접어들 것을 미래학자들은 내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않았던 제동이 걸렸습니다. 그것은 코로나바이러스라고 하는 세계 전염병이었습니다. Covid-19은 일상생활을 멈추게 했습니다. 만남을 멈추게 했고, 일터를 멈추게 했습니다. 많은 면에서 인류에게 위협을 주었습니다. 인간 생명의 위협, 경제적 위협, 심리적 불안, 단절된 사회적 관계로 인한 고립감 등을 주었습니다. 많은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멈춤은 어쩌면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요소였는지 모릅니다. 멈춤은 우리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게 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더 위험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과학문명과 함께 퍼지고 있는 인간의 내면의 탐욕의 바이러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변종 우상숭배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세계 도처에서 정치, 경제, 교육, 사회 전 분야에서 무신론의 바벨탑을 쌓게 했습니다.
[룻 이야기]
이삭 줍는 룻을 생각해 봅니다. 모압여인으로 이스라엘에 나그네로 온 사람입니다. 남편이 죽고 홀로된 과부입니다. 보호자가 없는 사람이었지만 오히려 시어머니를 봉양해야 했습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구속의 역사의 중심부에 선 사람이 되었습니다.
- 현재 고난에서 미래의 영광을 봐야 합니다.
고통의 자리에 서면 누구나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앞날을 걱정하면 그 무게에 압사당합니다. 그러나 버티면 그 자리가 축복의 자리가 됩니다. 애굽에 팔려간 요셉도 그랬습니다. 팔려간 그 자리가 애굽의 총리가 되는 자리였습니다.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던 다윗도 그랬습니다. 쫓겨 다니던 곳이 후에 왕이 된 자리였습니다. 이삭 줍던 룻은 나중에 그 밭주인이 되었습니다.
- 무엇으로 버틸 것입니까?
1) 신앙의 본질을 붙잡아야 합니다.
룻은 모압에서 섬기던 그모스 신을 버리고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에게 부르짖는 자를 도우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룻 1:16-17). 신앙이 회복되면 인생이 회복됩니다.
2) 인자함을 베풀어야합니다.
이삭을 주으며 시어머니를 봉양했습니다. 그가 베푼 인자함으로 룻은 밭주인인 보아스의 인자함을 받습니다. “사람은 인자함으로 남에게 사모함을 받느니라”(잠 19:22). 보잘것없는 배려가 은혜 받는 근거가 됩니다.
개인주의는 자기를 위해 공동체를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공동체 의식은 공동체를 위해 자기를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흉년 때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살았던 오르바는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인자를 베푼 룻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새 시대가 열렸습니다.
이삭 줍는 시대는 본질을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기회입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인자함으로 회복하는 기회입니다. 이런 회복은 변두리 사람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줍니다. 지금은 이삭을 줍는 시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