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상은 빨리 변하고 있습니다. 옛날이 좋다고 하면 ‘수구꼴통’이라는 멸시를 당하게 됩니다.
속도를 우상화하고 빨리 성장하고 빨리 출세하는 것이 모든 사람의 바람입니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과학은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전에 없던 통신기술의 발달과 교통수단의 발달은 능히 과학의
공헌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와 함께 사람들의 생각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신의 존재에
의존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이 신이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그리고 자기가 되고 싶은 존재가 되는 것이 진리이고 정의인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인간의 생각과 행동이 절대적인 선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속도와 함께 인류는 악의 소굴로 달려가고 말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전통적인 성별과 가족에 대한 개념, 희생과 섬김을 바탕으로 한 자유와 사랑에 대한 도덕률은
개인주의라는 도전 앞에 심각하게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속도’는 반드시 ‘방향’이라는
개념 안에서 제한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절대적인 선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죄지은 인류를
구원하시고, 지금도 살아계셔서 피조 세계를 돌보고 계시는 하나님에게는 오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라는 제한을 벗어나는 것은 물을 벗어난 물고기처럼 되는 것이고, 철로를 벗어난 기차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리되면 왕이 없으므로 각자의 소견에 옳은대로 행했던 사사시대의 탈선과 죽음을
재현할 것입니다.
코로나19 전염병이 전 세계적인 유행병이 된 것처럼 이제 ‘방향을 벗어난 속도’라는 신이 전 세계의
영적, 정신적 전염병이 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경험한 이 신이 이번에 한국에 갔을 때 그곳에도
있었습니다. 교회가 여전히 사회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었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소금이 되지 못하고
빛이 되지 못해서 받는 공격임을 분명히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교회가
세상과 달라서 받는 공격이라는 사실도 결코 배제되어서는 안됩니다. 세상이 요란하게 변해도
그래도 하나님의 꿈은 교회입니다. 어차피 교회는 하나님을 떠난 세상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그렇다면 맛을 잃어버려서 받는 공격보다 맛을 내면서 받는 공격이 낫지 않을까요?
이렇게 방향의 제한을 받을 때 그제서야 속다는 바른 속도가 됩니다. 그렇게된다면 요란한 세상은
어느덧 고요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