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차 인공지능의 사용이 우리 삶의 영역에서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많은 편리함을 제공합니다. 특히
졸음 운전하는 사람에게는 무인 자동차가 대신 운전을 해 주니 희소식이 될 것입니다. 의료기관에서도
이미 로봇을 사용하여 수술도 하고, 환자에게 필요한 약 처방도 인공지능이 의사보다 더 정확하게 해
내기도 한다고 합니다. 법정에서도 방대한 판결 자료를 분석하여 소송 당사자나 변호사에게 정보를
제공하여 승소를 이끌어 내는데 도웅을 준다고 합니다. 청년들에게 필요한 배우자 선택 문제도 이상형,
취미, 가치관 등을 입력하여 알맞는 짝을 찾아 주는 AI 중매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쳇GPT (ChatGPT)가 바쁜 목회자의 설교나 필요한 글쓰기 등을 대신해 준다는
것입니다. 실지로 지난 뉴욕장신 졸업식에서 한 목사님은 쳇GPT가 졸업식 축사를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소개한 일이 있습니다. 그 내용으로 보면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잘 정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설교자는 어떤 본문이든지 쳇GPT에게 물어보고 그것이 제공하는 내용을 그대로
설교해도 괜찮을까요.
누가복음 10장에는 강도 만난 사람과 그를 도운 사마리아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강도만난 사람을
보고 제사장도 그냥 지나갔고 제사를 돕는 레위인도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에게 멸시 받던
사마리아인은 가던 길을 멈추고 포도주와 기름으로 응급처치를 하고 여관집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볼 일을 마치고 돌아 올 때 더 돈이 들면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했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이 강도만난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간 것에는 아마 중요한 정보가 있었기 때문
이었을 것입니다. 강도가 숨어서 다른 행인을 노릴 수 있으니 빨리 그 자리를 피해야 한다는 생각과
죽은 사람을 만지면 부정하게 된다는 구약의 율법의 조항들이 생각났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AI도 줄
수 있는 정보입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에게는 상처받은 사람의 아픔을 공감하는 연민과 동정심이
있었습니다. 자기 것을 희생하여 남을 치유하고 회복하게 하는 섬김과 사랑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AI가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 10:3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AI는 많은 정보(deep learning)
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AI는 깊은 영성(deep spirit)와 깊은 통찰력(deep insight)은 줄 수
없습니다. 깊은 영성과 통찰력은 오직 기도와 말씀으로 예수님과 동행할 때 생기는 성령의 은혜입니다.
지금이야말로 갑절의 영감이 필요한 때입니다(왕하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