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 감사주일을 앞두고 한 주간 특별 새벽기도회를 통해 말씀과 기도의 잔치를 했습니다. 전해진 말씀을 요약해 봅니다.
1. 무엇이 강권하고 있나?(고후 5:11-19)
나의 생각을 무엇이 강하게 이끌고 있나는 질문이다. 사도 바울은 심한 고난을 받아 살 소망이 끊어질 정도였다(고후 1:8-9). 그러나
이런 상황에도 그를 강권한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었다. 그 결과 낙심, 불평, 자살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오히려 새 삶(9:15),
새 관점(9:16), 새 사명(9:18-19)이 그를 강권하고 있었다.
2. 어떻게 범사에 감사하나?(살전 5:16-18)
‘항상’이나 ‘범사’라는 말은 좋은 때나 나쁠 때 모두를 포함하는 말이다. 좋을 때는 기뻐하고 감사하기 쉬우나 나쁜 일이 닥칠 때
기뻐하고 감사하기는 쉽지 않다. 핵심은 어느 때나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 교만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쉬지않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으라. 기도는 햄버거로 치면 중간에 있는 고기 역할을 한다. 그러면 앞과 뒤의 빵은 자연히
기뻐하고 감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위급한 상황에서는 아무 생각 말고 무조건 이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물에 빠져 죽는 사람은
심폐 소생술로 먼저 살려야 한다. 살아 있음을 감사하라. 작은 것은 감사하라. 바로 감사하라. 이것이 ‘살작바’이다.
3. 그 아홉은 어디있는가?(눅 17:11-19)
나병환자는 육체적, 사회적, 영적 고통을 겪는 자이다. 예수님이 고쳐 주셨을 때 오직 천대받던 사마리아인만 예수께 감사하러 돌아
왔다. 주님은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신다. 받은 은혜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감사가 우선이다. 감사는 대나무 매듭처럼 또 다른
감사의 원인이 된다. 육신의 질병을 고친 사마리아인은 영혼의 구원까지 받았다. 영적 나병환자와 같은 내가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 그 은혜에 대한 나의 반응은 무엇인가?
4. 광야에서도 감사할 수 있나?(신 8:1-10)
신명기의 주제는 ‘기억하라’이다. 기억해야 감사할 수 있다. 광야는 고독, 고통, 위험의 장소이다. 그러나 광야는 축복의 장소이다.
하나님이 거기 계시기 때문이다. 광야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받는 곳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배우는 훈련장이다.
광야에서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다는 겸손을 배운다. 길이 없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법을 배운다. 광야 훈련이 끝나면
하나님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해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신다.
5. 감사가 되는 교회의 비결은?(살전 1:2-8)
개척당시 교회의 비전은 큰 교회가 아니라 건강한 교회였다. 성도들이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는 모델과 같은 교회였다. 창립 30주년을
맞으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로 인해 감사하고 기도했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하셨기
때문이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있는 감사의 조건은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였다.
6. 전천후 감사의 비결은?(합 3:16-19)
하박국은 처음부터 감사의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원망과 불평의 사람이었다. 무엇이 그를 변화시켰나? 하나님의 약속과 그 약속에
대한 믿음이었다(합 2:4). 현실은 바벨론의 공격으로 인한 전쟁의 공포와 국내적으로 불법의 성행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본적
생활용품마저도 다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박국은 구원의 하나님, 힘이 되신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가 드려야 할 감사는 어떤 감사일까?(롬 5:8).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감옥에 억울하게 투옥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찬송과 기도를 올렸다. 결과 옥문이 열리고 매인 것이 풀어졌다. 최고의 감사는 최악의 상태에서 믿음으로 드려진 감사이다.
이 때 하나님이 감동하시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