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예일  장로교회 | Yale Korean Presbyterian Church of New York

주께서 쓰시겠다 하라

본문: 막 11:1~10
제목: 주께서 쓰시겠다 하라.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예수께서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베어 호산나 호산나 외치며 주님을 환영했습니다. ‘호산나’라는 말은 ‘이제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오신 다윗의 자손, 메시아로 환영한 것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예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맞은 편 마을에서 아직 아무도 타지 않은 어린 나귀를 끌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사람들이 왜 그러냐고 물으면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제자들이 맞은 편 마을로 갔더니 정말 말씀대로 어린 나귀가 매여 있었습니다. 풀어서 끌고 오려하니 사람들이 왜그러냐고 묻습니다. 예수님이 시키시는 대로 주님이 쓰시겠다고 하니 사람들이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너무 신기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된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예수님이 만물의 통치자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원의 뜻을 성취하시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약성경 스가랴 9장 9절의 예언의 말씀, 즉 겸손하셔서 나귀 새끼를 타신다는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무수한 약속은 ‘아멘’하면 우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입니다(요 1:12). 그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을 것입니다(요 3:16).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요 5:24).

2. 당나귀의 가치는 누가 쓰시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당나귀는 말처럼 힘이 세지 못합니다. 말처럼 크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쓰시니 귀하게 되어 성경에도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제자들의 겉옷은 아마 먼지가 묻고 때가 많이 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귀위에 놓으니 예수님께서 타실 안장이 되었습니다. 오병이어는 작은 것일지라도 예수님께 드렸더니 장정만 5천명이 먹고 12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비록 우리 인생이 보잘 것 없어도 예수님께 드리면 가장 가치 있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3. 예수님이 쓰시려면 매인 것에서 풀어져야 합니다.
나귀가 매인 것에서 풀어질 때 예수님께로 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주님께 쓰임 받으려면 우리를 묶고 있는 것에서 풀어져야 합니다. 나의 안일과 태만에서 풀어져야 합니다. 나의 야망과 욕심에서 풀어져야 합니다. 나의 교만과 자존심에서 풀어져야 합니다. 내게 주신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생각하면 내가 드리는 것은 너무 적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찬송가 317장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내주 예수 주신 은혜 한없건만 내 주 앞에 이적은 것 다 드리니 주예수여 이 정성을 받으소서.”
전라도 신안군 증도의 권중경 전도사님의 이야기가 바로 예수님을 태운 나귀의 이야기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