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예일  장로교회 | Yale Korean Presbyterian Church of New York

부활하신 예수님

본문: 요 11:25-26

제목:   부활하신 예수님

도버 해협을 건너 프랑스로 가려던 어떤 영국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돈이 없어 있는 것을 다해 배표를 샀습니다. 그러나 돈이 없으므로 식당에서 음식을 살 생각을 못했습니다. 두 끼의 식사를 거른 후 프랑스에 다 도착할 무렵이었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자기의 사정을 이야기하자 그 사람은 크게 웃으며 “당신이 지불한 배표에는 식당의 음식을 먹을 모든 값이 포함되어 있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원통하고 분한 일입니까?

그러나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이 이야기를 통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천국 가는 배는 탔지만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사는 많은 그리스도인들 말입니다. 세상을 이길 능력을 주셨지만 그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패배하는 그리스도인들 말입니다.

 

부활 사건은 과거의 지식이 아닙니다. 부활은 오늘을 살아가는 능력입니다.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병들어 죽어간다는 소식을 들으시고도 계시던 곳에서 이틀을 더 머무셨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이것이 섭섭했던 모양입니다. 예수님이 계셨다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둘이 동일한 말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인간이 할 수 없는 말입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마르다가 말한 전통적인 부활의 개념을 뛰어 넘습니다. 마르다는 죽은 후에 부활할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네가 이것을 믿느냐”고 말씀하십니다.

 

갈라디아서 2장20절은 이 사실에 대한 설명을 분명히 해 줍니다. 우리 옛 사람은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사는 것은 내가 아니요 내 안에 사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입니다. 우리는 죄인으로 죽고 의인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않을 것으로 살았습니다. 나는 죽고 예수님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은 곧 우리의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활신앙으로 살았던 제자들은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의 변화, 초대교회의 유무상통, 스데반의 순교 등은 모두 부활신앙으로 말미암아 가능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건강하냐? 아프냐?가 아닙니다. 잘 사느냐? 못 사느냐?도 아닙니다. 우리 주님의 질문에 우리가 대답해야 합니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