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롬 3: 1~20
제목: 당신이 유죄인 까닭은?
우리는 로마서 2장을 통하여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 역시 표면적 할례가 아닌 이면적 할례여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니 유대인들에게서 질문이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의 선민인 유대인의 나은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맡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인데 유대인들은 이것을 깼다는 것입니다.
- 형식과 내용
형식은 내용을 담기 위해 있습니다. 내용이 없는 형식은 형식주의가 되고 위선이 됩니다. 예수님이 꾸짖으셨던 바리새인의 모습입니다. 또한 내용만을 주장해서도 안 됩니다. 형식없이 내용을 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회심 후 교회 선택, 등록, 세례, 양육, 직분을 맡아 하는 봉사 등은 그 형식에 맡는 내용을 담기 위한 것입니다. 결혼신고 없이 결혼생활하는 자는 조금만 힘들어도 이혼하기 쉽습니다. 신앙도 이런 형식을 통해 내용이 담겨집니다. 이것 없이는 조금만 어려워도 신앙을 떠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억지로 진 십자가를 통해서도 받는 은혜를 구레네 사람 시몬의 가정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담아야 할 내용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마 6:33). 우리는 신앙의 형식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와 예수 그리스도 안의 구원과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화를 담아야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 나는 누구인가?
빠르게 성장하는 정보화 시대에 손 안의 작은 핸드폰은 우리의 이런 필요를 채우는 긴요한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점점 무감각해 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정확한 정보 없이 우리는 구원의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9-18절 말씀은 우리 인간의 현 주소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다 죄 아래 있고, 다 치우쳐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도 없다고 고발하고 있습니다. “없다”는 표현이 무려 일곱 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정말 인간에게는 의로움이 하나도 없다는 뜻입니다.
목구멍은 열린 무덤입니다. 송장 썩는 냄새가 부패한 마음에서 나옵니다(렘 17:9). 입만 열면 부정적 이야기, 이간하는 이야기, 불평과 원망의 이야기, 불신앙의 이야기들로 가득 찹니다.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릅니다. 은혜 받는 데 보다는 정욕과 쾌락을 향해 빨리 달리고 있습니다. 율법이 x-ray처럼 우리의 내면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절망적입니다. 절망해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의 빛을 향하여 손을 내밀기 때문입니다. 다음 주일을 기대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