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롬 7: 14~25
제목: 마음 속의 싸움
우리의 마음속에 싸움이 있습니다. 하나는 선을 행하려는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악을 행하려는 마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에는 새 사람이 되어 속사람이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여 선을 행하려고 하나,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도 바울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만드는 것은 자기가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죄라는 것을 말입니다(17, 20절).
우리가 먹는 음식에는 약간의 대장균이 들어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그 음식을 잘 소화하고 음식을 통해 힘을 얻습니다. 그러나 저항력이 약한 사람은 그 음식을 소화하지 못하고 설사하고 몸이 도리어 쇠약해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영적으로 약해져 있거나 방심할 때 우리 안에 아직 남아 있는 죄는 우리를 사로잡아 우리가 원하지 않는 악을 저지르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싸움이 얼마나 처절한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곤고한 사람이요 사망의 몸으로 고통하는 자라고 탄식합니다(24절). 자신의 힘으로 벗어날 수 없는 절망이 그에게 있었다는 것이 정말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주를 위해 섬기고 복음을 위해 헌신한 사람에게 이런 모습이 있다는 말입니까?
베드로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대한 바른 신앙고백을 드려 칭찬을 받은 사람입니다(마 16:16-18). 예수님은 그 고백위에 예수님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베드로는 다 버려도 자신만은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했으며, 죽는 곳까지 주님과 함께 가겠다고 장담을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세 번 예수님을 부인하고 맙니다. 무엇이 베드로의 본심입니까? 정말 그는 예수님을 끝까지 사랑하고 따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부인 하리라고는 아마 자신도 몰랐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눈과 부딪힐 때 그는 뛰쳐나가 통곡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고 말입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밧세바와의 불륜의 사건 후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침상을 적시기까지 회개의 눈물을 흘립니다. 목동을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시다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구속의 뜻을 이루어 가시려는 하나님 앞에 몸둘 바를 몰랐을 것입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그가 방심한 틈을 타서 그가 원하지 않았던 일을 하게 한 죄가 아닙니까?
절망 중 소망의 메시지가 들려옵니다. 예수님을 보니 희망이 생깁니다. 나 혼자로는 안 됩니다. 나는 외롭고 곤고합니다. 나를 살려 주세요. 절규하는 인간에게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절망의 땅에 오셔서 손을 내 미십니다. 내 손을 잡으라!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