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롬 9: 19~33
제목: 남은 자
성경에서 남은 자의 신앙은 매우 중요합니다. 노아 홍수 때 남은 자인 노아의 가족은 홍수 후 새 나라의 씨앗이었습니다. 약 200만 명이 출애굽 했으나 여호수아와 갈렙 만이 가나안으로 들어가고 나머지는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의 정복을 위한 씨앗이 되었습니다. 북왕국 아합왕 시대에 바알에게 모두 절하는데 우상숭배 하지 않고 남은 자의 수가 7,000명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를 이어가는 생명의 씨앗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스라엘의 수가 바다의 모래 같을 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받는 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7절). 그리고 그들이 하늘나라를 위한 씨(종자)로 남겨질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9절).
그러면 어떻게 남은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까?
- 하나님의 긍휼로(22-24절)
긍휼은 마땅히 받아야 할 진노를 받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은 마땅히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영광받기로 예비하신 긍휼의 그릇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좋은 예로 사도 바울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복음의 훼방자요, 교회를 핍박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실 긍휼의 그릇으로 삼아 주셔서 오래 참으시고 관용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후에 믿는 자에게 본을 보이려 하심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를 오래 참아주시고 관용하셔서 오늘의 이 자리에 오게 하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찬양하게 됩니다. 이제 우리도 남은 자의 사명을 가지고 후에 믿는 자에게 본이 되는 삶을 더욱 힘써 살아야 할 것입니다.
- 하나님의 사랑으로(25, 26절)
음란한 여인 고멜과 결혼하라는 명령을 호세아 선지자는 받게 됩니다. 결혼하고도 그 음란한 모습은 바뀌지 않습니다. 자꾸 다른 남자에게 갑니다. 돈과 곡식을 주고 사와도 또 나갑니다. 자식을 낳아도 자기 자식인지 남의 자식인지 모릅니다. 이스르엘, 로루하 마, 로암미 등은 그 아픔을 표현하는 호세아 선지자의 자식들의 이름입니다. 이것이 자로 아픈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불러주시고,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불러 주셨습니다. 남은 자는 이 사랑에 감격하여 회개하며 하나님의 품으로 온전히 돌아오는 자들입니다.
- 이 은혜를 믿음으로(30-33절)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없으면 모두 진노의 그릇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광야에서 불 뱀에게 물려 죽어가던 자들이 장대의 놋 뱀을 바라보았을 때 살아났던 것처럼, 십자가의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자는 영생을 얻게 될 것입니다(요 3:16).
[결론]
위험은 또 하나의 기회입니다. 지속적인 고난 가운데서 우리는 우리를 세계의 한 중심에 보내주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해야 할 때입니다. American Dream이 아니라 Kingdom Dream을 꿈꿔야 할 때입니다.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서 맛을 잃은 소금이라는 말을 들을 때 우리는 제도적인 교회(Institutional Church)에서 선교적인 교회(Missional Church)로의 사명을 깨우는데 앞장서는 남은 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