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민 22: 21~35
제목: 발람과 말하는 나귀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나안을 향한 행진을 두려워 한 모압 왕 발락이 브돌(메소포타미아, 이라크)의 점술가(수 13:22) 발람을 시켜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뇌물을 주고 유혹합니다.
- 하나님의 백성은 어느 누구도 저주할 수 없습니다.
먼저 발람은 비록 하나님과 대화를 한다고 해서 참 선지자는 아닙니다. 베드로후서 2장 15절과 16절은 그를 미친 선지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때를 따라 우리에게 교훈을 주시려고 악한 자도 사용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발람은 모압 왕 발락의 사주를 받아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려고 해도 하나님께서 축복하라고 말씀하셔서 축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또 그 무엇도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를 저주할 수 없습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롬 8:31-39). 성탄의 계절에 이 은혜를 다시 한 번 감사합시다.
- 고집은 큰 시련 후에 고치는 어리석음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지 말라고 했지만 계속되는 발락의 유혹에 발람은 흔들립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모압 왕 발락에게 가라고 하셨지만 결국 진노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참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꾸 고집부리면 가라고 하시지만 결국 그것은 심판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요나가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다시스로 가다가 당한 풍랑, 물고기 뱃속의 고통 등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
- 좋은 만남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발람과 발락의 만남은 자기의 이득을 위해 서로를 이용해 먹는 만남입니다. 세상적인 만남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발락은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발람을 이용하려 했고, 발람은 물질적인 목적을 위해 발락을 이용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만남을 결국 헛될 뿐이었습니다. 우리의 만남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만남, 교회와 이웃의 덕을 위한 만남, 자신의 신앙생활의 발전을 위한 만남이 되기를 기도합시다.
[결론]
사람이 탐욕에 눈이 어두워 하나님의 뜻을 보지 못할 때 하나님은 짐승을 사용하십니다. 탐욕에 눈이 어두워 발락에게 가는 길을 막고 선 하나님의 사자를 보지 못하는 발람이었지만 그를 태운 나귀는 칼을 들고 서 있는 하나님의 사자를 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자를 피하는 나귀를 세 번이나 때리는 발람을 향하여 나귀가 왜 때리느냐고 입을 엽니다. 결국 발람의 눈이 열려 하나님의 사자를 보고 범죄하였다고 회개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소도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를 양육하신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탄식하고 있습니다(사 1:2, 3).
이 성탄의 계절에 우리 눈이 열려 탄생하신 메시야와 다시 오실 재림의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열리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이 처음 사랑으로 다시 뜨거워지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