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 5:4
제목: 애통하는 자의 복
애통은 가슴이 찢어지도록 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 우느냐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가져오고, 세상 근심은 사망을 가져옵니다(고후 7:10).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지금 우는 자는 웃을 날이 올 것입니다(눅 6:21). 그러나 지금 하나님의 뜻을 따른 애통이 없는 자는 애통하며 울 날이 올 것입니다(눅 6:25).
그러면 무엇을 위해 울어야 합니까?
- 자신의 죄에 대한 회개의 눈물
1) 다윗의 참회의 눈물(시 6:6): 밧세바와의 범죄 후
2) 베드로의 통곡: 예수님을 부인한 후
3) 바울의 탄식(롬 7:15-24): 죄인 줄 알면서 기어이 죄를 짓고 마는 연약함
- 자녀를 위한 눈물(눅 23:28)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자녀의 건강, 학업, 친구, 장래 등을 위해 우십시요. 그러나 무엇보다 자녀들의 신앙을 위하여 우십시요. 부모님의 눈물의 기도로 자녀는 변화됩니다.
- 교회와 민족을 위한 눈물(눅 19:41-46).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우신 예수님의 눈물은 그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눈물이었습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죽이려고 음모하는 예루살렘을 향한 눈물이었으며, 하나님의 돌보심을 외면한 그들의 영적 어두움이 대한 눈물이었습니다.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으려고 애썼지만 그것을 외면한 그의 백성들을 향한 애통의 눈물이었습니다(마 23:37).
사람들은 정죄하고 분노하기를 좋아하지만 교회와 민족의 죄를 두고 애통하지 않습니다. 분노와 정죄는 점점 더 편을 나누게 합니다. 예수님은 분노와 정죄 보다 애통하셨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위로가 교회와 민족에게 임합니다.
[결론]
우리는 모두 위로가 필요합니다. 남편도 위로가 필요하고, 아내도 위로가 필요합니다. 자녀들도 위로가 필요합니다.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들어 갈 수 있습니다(마 18:3-4). 어린아이는 울음으로 문제를 해결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애통할 때 하나님의 위로가 하늘로 부터 임할 것입니다(시 126: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