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 5:7
제목: 긍휼이 여기는 자의 복
긍휼은 타인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도와 주려는 넓은 마음입니다.
- 예수님 당시 유대 사회의 모습(요 8:1-11).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을 사람들이 예수님께 끌고 왔습니다. 둘러 선 사람들의 손에는 이 여인을 치려는 돌이 들려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였습니다. 아무도 돌 던지지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 여인을 향하여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하던 자가 없느냐?”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도 정죄하지 않으니 다시는 가서 죄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의 모습은 자기의 의로움으로 남을 정죄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간음 중에 잡힌 여인도 긍휼히 여기시며 용서하시고 새 출발하게 하십니다. 이게 긍휼입니다. 이 긍휼이 그 여인만 살린 것이 아니라 나 같은 죄인을 살린 은혜입니다. 이 긍휼 때문에 하늘의 영광스러운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시고 모든 죄의 빚을 갚아 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은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리고 이 긍휼로 구원받은 우리도 서로 긍휼히 여기며 사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 긍휼히 여기는 자가 받는 복은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1) 이 세상에서
이 세상의 삶은 형통과 고난의 연속입니다(전 7:14). 누구나 형통함만 타고난 사람이 없으며 고난만 타고난 사람도 없습니다. 내가 베푼 긍휼은 언젠가는 내게로 돌아옵니다. 특히 내 인생의 고통의 순간에 꼭 필요한 사랑으로 찾아옵니다. 저의 대학교 친구가 추운 겨울에 보따리 장사하는 어떤 아주머니를 도와주었다가 고마움을 느낀 그분의 딸과 결혼한 일이 기억납니다. 대문을 항상 열어 놓고 거지나 넝마주이가 오면 꼭 밥상을 차려 주셨던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주신 집사님이 있습니다. 그 집사님의 아버지는 작은 사업을 하셨는데 그만 일찍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어머니께 그 사업을 물려 주셨는데 집안 살림만 하시던 어머니가 어떻게 그 사업을 이끌어 가실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도와주는 사람들이 자꾸 나타났습니다. 바로 어머니가 밥 먹어 주셨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중에는 그 지역 경찰 서장이 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벗어 날 수 있었습니다.
2) 마지막 심판 날에
마지막 심판 날에 긍휼을 행하지 않았던 자들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습니다(약 2:13). 천국은 마치 종들과 결산하려는 임금과 같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마 18:21-35). 일만 달란트 빚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일만 달란트는 약 6천만 데나리온입니다. 그리고 한 데나리온은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그렇다면 16만 5천년을 노동해야 갚을 수 있는 엄청난 빚이었습니다. 모든 소유를 팔아 당장 갚으라는 주인의 호령에 기다려 주시면 반드시 갚겠다고 읍소합니다. 불쌍히 여긴 주인이 모든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집으로 오는 길에 자기에게 100데나리온 빚진 사람을 잡아 빚을 갚을 때까지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주인이 그 긍휼이 없는 종을 잡아 빚을 갚을 때까지 옥에 가두었습니다. 예수님의 결론이 중요합니다. “너희가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 아버지께서도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 18: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