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예일  장로교회 | Yale Korean Presbyterian Church of New York

영적 청춘으로 삽시다

본문:  시 103: 1-5

제목: 영적 청춘으로 삽시다

인간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잊혀 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 받은 것을 잊어버린다면 세상에서도 몹쓸 인간으로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민족입니다.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시켜 주신 것, 광야 40년 동안 먹이시고, 마시게 하시고,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해 주신 것, 약속의 땅에 들어 갈 때 요단강을 갈라지게 하신 것,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신 것, 기적을 베풀어 주셔서 그 땅을 차지하게 하신 것 등 엄청난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행하신 큰일을 본 자들이 죽고 다음 세대가 들어섰을 때 그들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삿 2:7, 10). 그 결과 그들은 죄의 유혹과 우상 숭배의 유혹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결국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가 무너지고 그들이 포로로 잡혀 가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그러면 이런 결과가 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1절과 2절에 걸쳐서 세 번씩이나 강력하게 명령하고 있는 것은 “여호와를 송축하라”입니다. 하나님을 송축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가 베푸신 모든 은택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Thank’는 ‘Think’에서 왔습니다.

 

  1. 제일 먼저 송축해야 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내 모든 죄악을 사하여 주신 것입니다(3절). 시편 103편 10-13절에서는 죄사함을 베푸시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특히 11절에서는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한다고 하는 것은 죄악을 따라 그대로 갚지 않고 기다려주시는 하나님께 연약함과 실패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회개하며 나아오는 모습을 말합니다. 그 때 베푸시는 하늘같이 높은 그의 인자하심이 12, 1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멀리 옮겨주시며,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같이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십니다. 마치 이 모습은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를 연상케 합니다.

 

  1. 두 번째로 송축해야 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우리 모든 병을 고치시는 것입니다(3절). 병을 고친다는 말은 찢어진 것을 꿰맨다는 뜻입니다. 망가진 것을 수리한다는 뜻입니다. 원래 모습으로 회복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못 고칠 질병이 없습니다. 지금 병으로 고통하시는 분은 이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미리 송축해 보세요.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혹은, 지금 아프지 않은 분은 하나님께서 이미 고쳐 주셨기 때문이기에 잊지 말고 송축합시다. 또는, 금년 한 해 건강하게 지내 오신 분들도 건강 주심을 감사하며 송축합시다.

 

  1. 세 번째로 송축해야 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십니다(4절). “관을 씌우신다”는 말은 우리를 인자와 긍휼로 둘러 주신다는 뜻입니다. “인자”는 언약에 기초한 사랑을 말하고(사 43:1), “긍휼”은 어머니가 태아를 자궁에 품고 보호하고 영양분을 제공하며, 출산 후에도 그렇게 하는 모습을 말합니다. “파멸”은 죽음과 같이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시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은 목동에서 왕이 된 사람입니다. 그냥 된 것이 아닙니다.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습니다. 그러나 파멸에서 속량하신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있었기에 그가 왕이 될 수 있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면류관은 금 면류관이 아니라 인자와 긍휼의 면류관입니다.

우리는 죽을 뻔 한때가 없었습니까?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정도로 막막할 때가 없었습니까? 오늘 우리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우리를 둘러 주셨기 때문이 아닐까요?

 

[결론]

다윗이 털을 간 독수리처럼 영적 청춘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좋은 것으로 그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소원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그것은 다윗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 한 가지입니다(시 27:4). 그것은 그가 여호와를 자기 목자로 삼고 그만 의지하고 따라가는 것입니다(시 23:1). 그것만 있으면 다 됩니다. 죄악을 사하시는 아름다움, 병을 고치시는 아름다움,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는 아름다움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기 때문입니다.

 

감사의 계절을 맞이했습니다.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맙시다. 특히 죄사함의 은택, 병 고치심의 은택, 생명을 파멸에서 건지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신 은택을 감사하며 송축합시다. 이 길이 죄악의 유혹과 시련의 풍파 앞에서 우리가 무너지지 않는 길입니다. 이 길이 독수리처럼 날마다 영적 청춘으로 사는 길입니다. 당신은 영적 청춘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