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예일  장로교회 | Yale Korean Presbyterian Church of New York

소녀야 일어나라

본문: 막 (Mark) 5:21~24, 35~43

제목: 소녀야 일어나라

고난은 해석되지 않으면 낙심, 원망, 회의의 원인이 됩니다. 그러나 해석이 되면 은혜, 축복, 성숙이 됩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때에 고난에 대한 바른 성경적 해석이 필요합니다. 이 세상의 누구도 고난을 면제받고 사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회당장 야이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 고난의 시간은 예수께 엎드려 간구할 때입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고난은 그의 어린 딸이 죽게 된 것입니다. 그는 이 문제 때문에 예수님께 왔습니다. 예수께서 그의 청을 들으시고 그와 함께 그의 집으로 가십니다. 고난의 때에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주님께 기도로 엎드리는 것입니다. 자녀의 문제, 건강의 문제, 경제의 문제, 신분의 문제, 마음의 상처의 문제, 이민생활의 무거운 짐의 문제, 인간관계의 문제 등 수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주님께 엎드려야 합니다.

 

  1. 예수님과 동행할 때도 믿음의 시련이 올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도중에 열두 해 혈루증을 앓아 온 여인이 개입합니다. 한 시가 급박한 상황이기에 예수님의 걸음이 지체되는 것을 보고 회당장의 마음은 타고 또 탔을 것입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고 믿음으로 병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시간에 회당장의 집에서 온 사람들이 그의 딸이 죽었다는 절망적인 보고를 합니다. 이젠 더 이상 선생(예수님)을 괴롭힐 이유가 없다는 회의적인 말을 합니다. 회당장은 맥이 다 풀렸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 여인을 향한 분노가 치밀어 올라 왔을지 모르겠습니다.

예수 믿고 교회 나가기 시작했는데도 고난이 올 수 있습니다. 영적 성장을 위하여 제자훈련을 시작했는데도 예상치 않았던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1. 내가 무기력해 질 때는 더욱 능력의 예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37절)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을 합니다. 진취적이고 좋은 말입니다. 그러나 만일 나 스스로 도울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야이로처럼 자기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황에 처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비록 이런 상황일지라도 예수님의 말씀을 붙들 수 있습니다.

 

[결론]

은혜는 겸손한 자에게 임합니다. 예수께서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셨을 때 사람들이 비웃었습니다. 주님은 조롱하는 사람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달리다굼이라고 하시며 소녀의 손을 잡고 일으키셨습니다. 그 말의 뜻은 “소녀야 일어나라”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조롱하는 자에게는 은혜의 문이 닫힙니다. 비록 절망적인 상황일지라도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면 주님은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렇다면 이 소녀는 누구입니까? 물론 회당장 야이로의 딸입니다. 그러나 한 번 더 물어 봅니다. 이 소녀는 바로 나입니다. 지금 육체의 질병으로, 마음의 상처로, 삶의 고통으로 누워있는 나입니다. 우리가 힘든 시간에도 예배의 자리로 돌아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손을 내밀어 내 손 잡으시며 “소녀야 일어나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이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