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예일  장로교회 | Yale Korean Presbyterian Church of New York

제 3의 눈

본문:  요 (John) 1:1~11

제목: 제 3의 눈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는 서로 간의 약속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원칙이라고 합니다. 원칙은 세워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동체는 가정이나, 사회나, 국가나 질서를 잃고 혼란 속에서 무너집니다. 원칙을 세우는 힘은 이성입니다. 이성은 도덕적 기준과 원리를 우리의 삶 속에 세우는데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때론 옳고 그름의 기준을 선택하기 힘들 때도 옵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힘들 때는 어느 때보다 영성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것을 오늘 제 3의 눈이라고 불러 봅니다. 영성은 이성과 원칙을 뛰어 넘는 영적 권위입니다. 이성과 영성은 함께 가야 합니다. 만약 이 둘이 함께 가지 않으면 다수의 이름으로 소수를 핍박할 수 있습니다. 힘 센 사람이 약자를 짓밟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바로 이런 말씀입니다.

 

  1. 서기관과 바리새인

서기관은 율법을 연구하고 해석하여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바리새인은 누구보다 그 율법을 잘 지킨다고 장담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묻습니다. 모세는 이런 여인을 돌로 치라고 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하실 것이냐는 질문입니다. 이렇게 질문하는 이유는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예수님을 시험한 것이었습니다. 만약 돌로 치라고 하면 지금까지 사랑과 용서를 외친 것이 모순이요 위선이라고 몰아칠 것이며, 사랑으로 용서하라면 모세의 율법을 어겼다고 고소할 작정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가진 율법 지식으로 예수님을 올무에 빠뜨리려는 교묘한 작전을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1. 음행 중에 잡힌 여인

떳떳한 일로 예수님께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돌로 치려고 하는 가운데 두려움과 수치 속에서 떨고 섰습니다.

 

  1. 예수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님과 여인만 남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여인에게 묻습니다. 너를 고발하고 정죄하던 자들이 어디 있느냐고. 여인은 없다고 대답합니다. 그 여인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너무 가슴 깊은 감동을 줍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용서하시는 예수님, 그러면서 새 출발하게 하시는 예수님이 너무 좋습니다.

 

[결론]

이 이야기에 나오는 출연자 중에 나는 어디에서 발견됩니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혹은 음행 중에 잡힌 여인? 아니면 두 사람들 모두에게서? 오래전에 제자훈련 중 어떤 성도님께서 끝까지 돌을 들고 치려고 하는 젊은이의 모습에서 자신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그 돌을 어떻게 하실거냐고? 그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습니다. ‘이제 돌을 놓겠습니다.’ 아직 잊지 못할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종교개혁 주일을 맞아 우리가 신앙적으로 더 성숙하여 예수님의 영성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돌로 치려고 하는 사람에겐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하여 돌을 놓게 하고, 음행 중에 잡힌 여인에겐 용서로 새 출발하게 해 주는 예수님의 영성을 닮은 예일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