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예일  장로교회 | Yale Korean Presbyterian Church of New York

이삭 줍는 시대

룻(Ruth)2: 1-13

제목: 이삭 줍는 시대

풍성한 추수를 거둘 때도 있지만 때론 이삭을 주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지금은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세계적 전염병으로 이삭을 줍는 시대인 것이 분명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많은 면에서 인류에게 위협을 주고 있습니다. 인간 생명의 위협, 경제적 위협, 심리적 불안, 단절된 사회적 관계로 인한 고립감 등이 대표적인 위협일 것입니다.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코로나바이러스가 코로나블루 같은 막다른 골목이 되기도 하고, 또 더 깊은 은혜를 체험하는 기회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나치 정권하의 유대인 포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Victor Frankl)은 “인간에 있어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마지막 남은 자유인 태도 결정은 빼앗아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포로수용소에서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사람이 더 건강하고 살아남을 확률이 높았다고 그는 증언합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삶의 의미를 붙잡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라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사회과학은 인류에게 찾아 온 고통을 줄이고 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것이 지금은 마스크 쓰기와 사회적 거리두기입니다. 그리고 백신 개발입니다. 성경은 고난 중에서 고난의 의미를 찾게 합니다. 고난 중에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이어야 하는가?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하는 질문에 의미 있는 해답을 찾게 합니다.

 

[룻 이야기]

이삭 줍는 룻을 생각해 봅니다. 모압여인으로 이스라엘에 나그네로 온 사람입니다. 남편이 죽고 홀로된 과부입니다. 보호자가 없는 사람이었지만 오히려 시어머니를 봉양해야 했습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은 은혜(헤세드)를 입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증조모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된 사람입니다.

 

  1. 모진 인생이지만 버텨야 합니다.

고통의 자리에 서면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앞날을 걱정하면 그 무게에 압사당합니다. 오늘만 버티면 됩니다. 그러면 그 자리가 축복의 자리가 됩니다. 애굽에 팔려간 요셉도 그랬습니다. 팔려간 그 자리가 애굽의 총리가 되는 자리였습니다.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던 다윗도 그랬습니다. 쫓겨 다니던 곳이 후에 왕이 된 자리였습니다. 이삭 줍던 룻은 나중에 그 밭주인이 되었습니다.

 

  1. 무엇으로 버틸 것입니까?

1) 신앙으로 버텼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주를 의지하면 주께서 지켜주십니다. 주를 높이면 주께서 그를 높여 주십니다. 룻은 모압에서 섬기던 그모스 신을 버리고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에게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룻 1:16-17).

2) 인자함을 베풀며 버텼습니다.

이삭을 주으며 시어머니를 봉양했습니다. 그가 베푼 인자함으로 룻은 밭주인인 보아스의 인자함(친딸 대접, 양식, 보호, 물, 식사초대)을 받습니다(눅 6:38).

“사람은 인자함으로 남에게 사모함을 받느니라”(잠 19:22). 보잘것없는 배려가 은혜 받는 근거가 됩니다. 우연도 필연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이삭 줍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누구이어야 합니까? 나는 무엇으로 삽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전염병에 쫓기듯이 살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서 역설의 진리를 발견한다면 오히려 신앙의 성숙을 맛볼 것입니다. 미래에 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는 준비 기간이 될 것입니다. 품격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멋있게 변화될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