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예일  장로교회 | Yale Korean Presbyterian Church of New York

독수리는 난다

본문: 신 (Deut) 32:9~12

제목: 독수리는 난다

핵이 제일 무서운 줄 알았는데 이젠 작은 바이러스 앞에서 온 인류가 떨고 있습니다. 인종, 신분, 나이에 차별 없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고 있습니다. 땅이 넓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세계 최강국인 미국이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을 막아내지 못하고 있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뉴욕에서는 쌓이는 시신 수습마저도 제 때 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겸손은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신가? 하나님은 어떻게 그의 백성을 다루시는가? 이것을 알기 위해 하나님을 대면하고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인도한 모세에게 가서 물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그의 분깃, 그의 기업, 그의 소유로 생각하신다는 것입니다(요 1:12; 고전 6:20). 그러나 그의 백성의 현주소는 황무지와 광야입니다. 황무지와 광야는 일교차가 심한 곳입니다. 맹수와 독사나 전갈의 위험성이 있는 곳입니다. 메마름과 황폐함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황무지에서 그리고 광야에서 만나 주시고 호위하시고 보호하십니다.

 

  1. 눈동자같이 보호하십니다(10절).

눈동자는 매우 약합니다. 그것을 두개골에 두 개의 굴을 파고 넣어 주셨습니다. 눈썹을 달아 비와 땀으로부터 보호하십니다. 속눈썹을 달아 먼지를 막아 줍니다. 그래도 이물질이 들어오면 눈물샘으로 씻어 냅니다. 우리는 지금 이렇게 보호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 독수리처럼 훈련하십니다(11절).

눈동자같이 보호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해 주실까에 대한 관심이라면, 독수리처럼 훈련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는 가에 대한 관심입니다. 만일 눈동자와 같이 지켜주시기만 한다면 교회는 오랜 신앙생활을 해도 젖병 물고 기저귀 차고 다니는 성도들로 가득찰 것입니다. 이 광야의 의미를 모르면 광야에서 쓸어져 죽은 광야 1세대들처럼 될 것입니다.

1) 보금자리를 어지럽히는 어미 독수리

독수리는 높은 곳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부화합니다. 알에서 깨어나서 어느 정도 크면 어미 독수리는 보금자리를 어지럽혀 새끼 독수리를 낭떠러지로 떨어뜨립니다. 떨어져 바위에 부딪혀 죽기 전에 날개로 받아 다시 공중으로 올라갑니다. 그러므로 새끼 독수리가 제일 힘들 때는 어미 새가 가장 가까이 있을 때입니다. 우리가 가장 힘들 때는 하나님이 우리와 가장 가까이 계실 때입니다.

2) 반복되는 시련은 날개의 근육 강화를 위함입니다.

근육 훈련을 하는 분들도 작은 아령으로 근육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몇 번만 들어도 힘에 겨운 역기를 들어야 강한 근육이 생긴다고 합니다. 계속 반복되는 시련은 우리를 지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을 주시지 않습니다(고전 10:13).

3) 광야에서 약속의 땅을 바라봅시다.

잡새는 폭풍에 쓰러지지만 독수리는 강한 날개로 폭풍 속을 날아 폭풍 위로 갑니다. 욥의 고백처럼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지금 코로나바이러스가 편안했던 보금자리를 흔들고 있습니다. 지금은 죽으라고 믿음의 날개를 치며 하나님을 바라 볼 때입니다. 광야는 보호하시고 공급하시는 곳일 뿐만 아니라, 광야는 훈련하시는 곳입니다. 잡새는 쓰러지지만 독수리는 납니다. 우리 한 번 이렇게 외쳐 봅시다. “잡새는 쓰러진다. 그러나 독수리는 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