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예일  장로교회 | Yale Korean Presbyterian Church of New York

인생을 변화시킨 패배

본문: 창(Gen)32:22-32

제목: 인생을 변화시킨 패배

야곱의 이야기를 성경의 기록대로 차근차근 다시 읽어보면서 몇 가지 질문을 해 봅니다.

얍복 나루의 씨름은 처음부터 진짜 씨름이었나? 아니면 씨름하듯 한 기도였나? 야곱은 씨름 상대가 처음부터 하나님의 천사인줄 알고 씨름했나? 아니면 자기 목숨을 위협하는 미지의 어떤 존재라고 믿고 씨름했나?

 

  1. 홀로 남은 야곱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는 야곱은 에서라는 문제 앞에 두려움의 밤을 보냅니다. 가족과 모든 소유를 다 얍복 나루 건너편으로 먼저 보내고 홀로 남게 됩니다. 갑자기 어떤 사람이 어둠 속에서 나타나 야곱과 씨름(레슬링)을 합니다. 정황상 에서가 보낸 자객으로 생각하기 쉬웠을 것입니다. 목숨이 위태로우면 사람에게는 초인적인 힘이 솟게 됩니다. 그렇게 낯선 사람과 날이 새도록 씨름을 합니다. 그 어떤 사람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의 허벅지 관절을 칩니다. 고관절이 어긋나면 힘을 못 쓰게 됩니다.

 

  1. 씨름하던 사람에게 축복을 요구하는 야곱

날이 새려하자 그 어떤 사람은 그만 자기를 가게 하라고 합니다. 야곱은 축복하지 않으면 안 보내겠다고 합니다. 같은 대상을 두고 생사를 건 씨름을 하는 것과 그에게 축복해 달라고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날이 새면서 어렴풋이 그 어떤 사람의 얼굴을 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얼굴은 자신을 죽이려는 얼굴이 아닌 사랑의 얼굴이었습니다. 거룩한 얼굴이었습니다. 어쩌면 20년 전 하란으로 도망갈 때 루스 땅에서 만난 그 하나님의 얼굴이 아닐까 생각이 났을 것입니다. 그 때 자신에게 있을 미래의 축복을 말씀하신 분이라면 반드시 그 약속을 이루어 주셔야 보내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면 죄인은 죽게 되어도 야곱은 생명을 무릅쓰고 매어 달린 것입니다.

 

  1.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 질문은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 왔느냐는 질문입니다. 야곱은 ‘빼앗는 자’란 이름의 뜻입니다. 간발의 차로 둘째 아들로 태어나서 특권에 대한 거절감이 주는 콤플렉스로 온 몸에 힘을 잔뜩 주며 투쟁하듯 움켜잡으며 살아 왔습니다. 그렇게 장자권도, 장자의 축복도, 아내도, 소유물도 움켜잡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까지 야곱이 의지해 왔던 힘의 근원을 치셨습니다. 이젠 하나님의 축복 없이 살 수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패배한 것이 자신의 승리가 된 것입니다(이스라엘). 지금까지 힘주며 움켜쥐고 산 인생이 이젠 하나님을 붙잡고 사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브니엘의 아침 해가 떠올랐습니다. 절룩거리며 오는 동생을 보며 에서는 달려와 입을 맞추고 서로 웁니다. 문제는 에서가 아니라 야곱이었습니다. 사람의 행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그의 원수라도 화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 줍니다(잠 16:7).

 

[결론]

야곱의 삶은 그가 기대한 대로 안 되었어도 그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가 이루어 졌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고통이 4개월 이상 지속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내가 기대한 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붙들고 있었던 나의 힘을 빼고 하나님의 축복의 손을 붙잡는다면 하나님은 패배가 나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축복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새겨 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코로나바이러스로 비록 절룩거리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약속의 말씀의 빛을 향해 걸어갑시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평안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