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예일  장로교회 | Yale Korean Presbyterian Church of New York

잠잠하라 고요하라

막(Mark) 4: 35-41

제목: 잠잠하라 고요하라

[본문 이야기]

릴리 호수는 길이 21km(13마일), 폭 13km(8마일), 수심 50m의 바다같은 호수이다. 갈릴리 바다는 북쪽 헬몬산에서 불어오는 찬바람과 낮 동안 따뜻하게 데워진 호수의 공기가 부딪칠 때 갑자기 폭풍우가
생기는데 때로 2m가 넘는 파도를 동반한 폭풍이 몰아치기도 한다. 예수님을 태운 배가 풍랑을 만난다.
제자들 중에는 어부 출신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죽게 되었다. 결국 배 뒤편에서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운다.
1. 예수님이 타신 배에도 풍랑이 있다.

생에는 폭풍이 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고 평탄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탄 배에도 폭풍이 있었다. 풍랑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받아 들이냐가 중요하다.
전도서 7:14에는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고 했고, 야고보서 5:13은
고난당할 때 기도하고, 즐거워할 때 찬송하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이 두 가지를 병행하신 것은 우리가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다. 즉,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 인생이다.
2. 죽게 되었을 때 예수님을 깨워야 한다.

수께서 제자들이 죽게 될 때 까지 놓아두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전까지는 자기 경험과 기술로
사는 것이 인생이다. 죽게 되어야 예수님을 찾는 것이 우리 문제이다. 삶의 고통은 생명의 신호이다.
맹장염의 고통은 복막염이 되지 않고 회복하라는 신호이다. 우리 인생에도 예기치 않은 풍랑이 일 때가
있다. (사업, 건강, 자녀, 바이러스). 두 가지만 확실히 하자.
먼저, 주님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믿으라. 그리고 예수님을 깨우자.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 33:3).
3. 예수님의 말씀에 권세와 능력이 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는 말씀에 바람과 바다가 순종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3)

교적인 권위에 갈수록 반감이 짙어지는 문화 속에 우리가 있다. 신성한 질서를 거부하고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문화 속에 우리가 살고 있다. 사람들은 기독교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인간의 권리를
제한한다고 조롱한다. 이런 문화 속에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가?

법은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복음의 능력을 우리를 통해 세상에 나타내는 것이다. 볼펜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볼펜을 보여주라. 사자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우리에 갇힌 사자를
풀어주라. 설명으로 안 된다. 보여주어야 한다. 누가 보여줄 것인가?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결론]
1. 풍랑은 한 번 오고 마는 것이 아니라 계속 온다. 실패가 다음을 위한 실력과 지혜가 되게 하라.
2.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운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제자들을 깨우셨다. “어찌하여” 하며 예수님은 우리의
신앙을 도전하신다. 팬데믹을 통하여 믿음 없이 살면 안 된다는 것을 전 세계적으로 가르치신다.
상황은 변한다. 과학, 경제, 군사력으로도 바이러스 못 막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신다.
영원한 것을 바라보라.
3. 믿음이 떨어지면 풍랑이 두려워지고, 예수님의 능력을 보면 바람과 바다가 두렵지 않게 된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탄 배에 예수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이다.
무서워말고 믿음으로 예수님을 깨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