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예일  장로교회 | Yale Korean Presbyterian Church of New York

맹인을 고치신 예수님

요(Jn.) 9:1-12

제목: 맹인을 고치신 예수님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나면서 맹인 된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신 표적이다. 제자들은 맹인으로 태어난 것이
자기 죄 때문인지 부모 죄 때문인지 물었다. 예수님은 자기 죄도 부모 죄도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다. 이에 가서 씻으니 눈이 밝아졌다.
1. 고통의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2-3절)
고통의 문제는 ‘누구 때문에, 혹은 무엇 때문에’라고 물을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하여’ 라고 물어야
한다. 즉, 관심을 과거에 두지 말고 미래에 두어야 한다. 임산부의 고통은 미래에 태어날 새 생명을
위한 것이다. 심지어 죄를 지어 감옥에 가도 출옥 후 복수할 생각하지 말고 회개하여 새 사람이 되면
다른 사람을 선도하는 사람이 된다.
2. 고통을 해결하는 방법은 주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다(6-7절).
1) 치유 방법은 다양하다. 백부장의 하인에게는 말씀만으로 고치셨다. 나병환자는 환처에 손을 대고
고쳐주셨다. 그러나 본문의 맹인에게는 순종하기 훨씬 어려운 말씀을 하셨다. 그래도 그 맹인은
순종했다.
2)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비교하면 내 생각이나 방법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을 막는다.
사도행전 12장에 보면 야고보는 순교를 했지만, 베드로는 풀려났다. 불공평하다고 또는 차별이라고
말할 것 없다. 나의 자리에서 순종만 하면 된다. 베드로도 있고 야고보도 있다. 문제는 순종이다.
3. 눈 뜬 자의 사명(5, 17절)
1)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시다(5절). 예수님은 FANNY J. CROSBY의 영안을 뜨게 하셨다(찬 288장). 그리고
노예 상인 JOHN NEWTON의 인생의 눈을 뜨게 하셨다(찬 305장). 그리고 나의 눈을 뜨게 하셨다.
2) 눈을 뜨게 하신 이유는 삶의 목적이 바뀌라는 뜻이다. 눈을 뜨고도 걸인처럼 행세를 해서는 안 된다.
나의 사리사욕만을 위해 살아서도 안 된다.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증거하는 사명자로 살아야 한다
(17절). 그렇지 않으면 눈을 뜨고 오히려 더 죄를 짓게 된다. 1789년 프랑스 혁명과 1917년 러시아의
볼세비키 혁명도 모두 교회가 정치와 결탁하여 눈먼 사람과 같은 군중을 착취함에서 폭발한
사건이다. 니카라과의 현재 정치적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결론]
1. 내 영안을 뜨게 하신 것을 감사하자.
2. 나도 어두워져 가는 세상에 한 줄기 빛으로 살기를 다짐하자.
[적용]
1. 나는 지금 당하는 고난을 어떤 관점에서 보고 있는가?
2. 내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어려운 부분은 무엇인가?
3. 눈 뜬 자로서 나는 어떻게 어두운 세상에 빛의 사명을 감당하기를 원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