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예일  장로교회 | Yale Korean Presbyterian Church of New York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요(Jn.) 11:25-26, 38-44

제목: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에 나타난 7가지 표적 중
마지막 표적이기도 합니다. 이 표적을 통해 우리는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됩니다(요 20:31).
본문에 등장하는 나사로의 가정은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가정이었습니다(3, 5절). 나사로는 오빠이고
그 밑에 마르다와 마리아라고 하는 여동생들이 있었습니다. 부모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봐서 아마
이 가정은 결손 가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기둥같던 오빠가 병에 걸려 죽게 되었습니다. 몇 가지
질문을 하면서 본문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1.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도 죽을병에 걸리는가?
우리는 예수님을 잘 믿으면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은 고난도
없고 만사형통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착각이 있습니다. 신앙의 목표가 나의 야망의
성취라면 예수님이 주인이 아니라 내가 주인인 셈이 됩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나의 꿈을 성취시키시는
하인이거나 서비스업자가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대한 기대가 클 수록 실망도 커집니다(21, 32절).
신앙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의 믿음의 성장입니다(4, 15절). 어떤 상황에서도 이 초점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됩니다.
2. 예수님도 우시는가?
성경에서 가장 짧은 절은 요한복음 11:35입니다. 우리말로는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고
되어 있지만 영어본은 “JESUS WEPT”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신 이유는 마리아와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불쌍히 여겨 우신 것입니다(33절). 예수님은 우리의 아픔을
공감하시는 분입니다(히 4:15). 삶이 너무 힘들어 울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옆에서 불쌍히 여겨 함께
우시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많은 위로가 될 것입니다.
3. 부활은 죽은 다음에 오는 것인가? 아니면 살아 있을 때에도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인가?(23-25, 38-44).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마르다는 마지막 날 다시 살아 날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뿐만 아니라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은 멀리 있는 신앙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맛 볼 수 있는 생명의 능력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죽음과
허무와 슬픔의 무덤에서 다시 살아 날까요?
1) 돌을 옮겨 놓으라(39절).
예수님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돌은 우리가 옮겨 놓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죽은 지 나흘이 되었다고 말하는 불신앙의 돌을 옮겨 놓아야 합니다(39절).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40절).
2) 나사로야 나오라(43절).
나사로 대신에 자기 이름을 넣어 다시 읽어 보십시오. 그리고 순종하여 절망과 한숨의 무덤에서
나오십시오. 순종이 기적을 만듭니다.
3)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44절).
무덤에서 나온 사람은 이제 수의를 벗고 다녀야 합니다. 즉, 옛 사람의 옷을 벗어야 합니다. 그것들은
거짓말, 분냄, 도둑질, 더러운 말, 비방,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일입니다(엡 4:22-32). 예수로 새 옷을
입으면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이 내 안에 새 생명으로 사실 것입니다(갈 2:20)